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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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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test 작성일24-06-18 02:17 조회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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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경성제대 교수로 부임한후지쓰카지카시(藤塚隣)는 추사의 학문과 예술을 흠모해 많은 자료와 함께 ‘세한도’를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1944년 수집가 손재형이후지쓰카를 찾아 100일 동안 문안하며 ‘세한도’를 달라고 청하자 “그대 나라의 물건이고 나보다 그대가 이 작품을 더 사랑하니.


20세기 초 추사 김정희 연구자로 이름이 높았던 경성제대후지쓰카지카시(藤塚) 교수가 그다.


후지쓰카교수는 1935년 한 강연에서 자신이 어떤 경로로 ‘연평초령의모도’를 입수하게 됐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청나라 학자 진전의 책을 읽다가 박제가의 문집에 쓰인 서문을 보고 박제가에게 관심을 갖게.


후지쓰카지카시와 조선 지식인 경성제국대학 교수이자 추사 김정희 전문 연구자인후지쓰카지카시의 모습이다.


사진=위키피디아 정민 교수는 2012년 8월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미국 보스턴으로 갔다.


떠나기 전 하버드에 제출한 연구주제는 ‘18세기 한중(韓中) 지식인의 문화 접촉과 교류’였다.


그 후 휘문학교를 설립한 민영휘(閔泳徽)의 집안으로 들어가 아들 민규식(閔奎植)을 거쳐 1930년대 서울(경성)에 와 있던 일본인후지쓰카지카시(藤塚隣)의 품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후지쓰카는 경성제국대학 교수로, 추사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었다.


1943년 봄,후지쓰카는 세한도를.


추사 김정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경성제국대학 교수를 지낸후지쓰카치카시가 소장한 자료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옌칭도서관에 소장돼 있는데 그곳에도 위 시집이 소장돼 있다.


목압서사에도 이 책이 소장돼 있다.


이 책의 출판은 1917년 ‘전주사가시(箋註四家詩)’라는 제목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추사 김정희 연구로 1936년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본 학자후지쓰카지카시(1879~1948) 가문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2006년 1만점이 넘는 추사 유물을 기증받아 추사박물관이 건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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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명예관장은 “과천시 추사박물관 명예관장에 위촉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전시에서는 추사의 연구자이며 추사를 사숙하는 학자로 일본인후지쓰카지카시(藤塚鄰·1879∼1948)가 소개되어 있었다.


그러나후지쓰카를 몰랐던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후지쓰카지카시는 일본의 대표적인 동양철학자로서 1921년부터 2년간 중국에 머물면서 청나라 경학과 고증학을 연구하던 중 조선의 박제가가 청나라.


후지쓰카지카시는 귀국하면서 세한도를 가져갔고, 고전 수집가였던 소전 손재형의 간곡한 요청으로 무상으로 반환하였으며 며칠 후 그 집이 미군 도쿄.


‘서예’라는 단어를 만든 서예가 손재형(1903~1981)은 ‘추사 김정희에 미쳐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인 연구자후지쓰카지카시를 찾아 도쿄로 건너갔다.


노령으로 병석에 누워 있던후지쓰카를 아침마다 찾아가 아무 말 없이 인사하고 되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하루에도 공습경보가 수차례 울리는 상황.


원래 소장자는 추사 김정희 연구로 잘 알려진후지쓰카치카시(1879∼1948) 전 경성제국대학교 교수다.


후지쓰카전 교수가 소장한 서적 다수는 태평양 전쟁 말기에 미군의 공습으로 불탔다고 알려졌는데, 방공호에 따로 보관한 박제가와 김정희 관련 귀중본 등은 화마를 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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