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정암해변/칠드라이브인/바다뷰제빵소/로드3521/솔비치 베이커리&카페 (/ ~ /)
페이지 정보
작성자 Coco 작성일24-10-18 07:47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살고 정암 있는 동네를 탐방하다가멀지않은 곳에 문화유적지가 있다길래 다녀왔습니다.이상적인 유교 정치를 구현하려던 조선 문신이자 정치가,시대를 앞서간 개혁가로 평가받는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심곡서원 입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6-9 심곡서원유형문화재7호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심곡로 14주택, 아파트단지, 상가 등마을이 함께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역사공부하러 방문하기 좋을 것 같아요. 입구의 홍살문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고옆에 있는 별도의 문을 통해 입장하면 됩니다. 일전에 지나갈 때 공사중이라 가려져 정암 있었는데지금은 단장을 모두 마친 상태라홍살문과 내삼문을 잇는 공간이 잘보여요.내삼문, 외삼문을 비롯해강당, 사당, 장서각, 서재, 산양제 등의건물 정보를 미리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홍살문과 주차장을 지나 보이는외삼문에 들어가는 문으로 넘어가면방문객을 위해 준비된 팜플렛과방명록을 작성하는 곳이 있어요.저도 날짜와 이름을 남겨봤습니다. 행사가 없는 시기라 저혼자 있어서조용히 건물들 구경했어요.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전통성 측면에서도 밀렸지만신하들에 의해 왕위에 오르다보니왕권보다 중종반정을 이끈 정암 중신들이 발언이 더 셌습니다.이 때 알성시에서 2등으로 급제한조광조의 “성실하게 도를 밝히고[明道] 항상 삼가는 태도[謹獨]를 나라를 다스리는 마음의 요체로 삼을 것”이란대책문의 중종을 사로잡았고 성균관 전적에 발탁되며이후에는 사림파의 영수로 떠올랐습니다. 실력있는 자를 천거를 통해 등용하자는현량과 제도를 실시하고 미신적인 행위라며 천제에 제사지내는 것을 담당하던 소격서를 폐지하는 등 성리학적인 이상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을 진행했습니다. 중종의 신임으로 개혁정책을 추진했었으나이도 오래 가진 정암 못합니다.조광조를 통해 기존 세력을 누르려고 했던중종은 조광조의 세력이 커지자정치적으로도 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초위왕'사건!조씨가 왕에 오른다는 글을 나뭇잎 위 쓴 것을훈구파에서 꾸며냈습니다.중종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위해등용했던 인재를 내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조광조를 위시한 신진세력을 숙청한 '기묘사화'는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하는데서 빠지지 않는중요한 사건입니다. 개혁가로 불리는 조광조에게도부정적인 평가가 있기 때문인데요.원칙과 성리학적 이상에 입각해 도적정치로엄정하게 비판하고 간쟁했기에 여러 관계가 복잡하게 정암 얽긴 현실과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현실 정치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는 평도 있습니다. 조광조가 추구했던 개혁정치가 빛을 보지 못하고사라졌지만 그의 정치 이념을 계승하려는유생들이 있었습니다. 조광조 사망 26년만인 1545년 인종의 유언으로조광조가 복권되었고 효종 원년(1649년)에 서원을 세워 심곡이라는 현판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습니다.공덕이 있는 사람에게 임금이 내리는 시호를'문정공'으로 받아서문정공 조광조라고도 부릅니다. 현종 14년(1673년)에 강당이 중건되었는데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무사했던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기도 정암 합니다. 안내문도 꼼꼼하게 읽어보고내부를 살펴보니 무척 정갈합니다. 여러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고유림이 모여 회의하고 학문을 토론하던장소였다니 무척 신기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른편에는 장서각이 있는데1920년대 지어졌다가 중건되었다고 하는군요.책과 정암집 목판등이 여러 차례 도난을 당했다니 도대체 이런 건 누가 왜 훔쳐가는걸까요?문이 열려있는데 먼지하나 없이 말끔합니다.사진과 여러 책들이 유리장안에 보관 중이에요.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지만강당, 사원, 장서각, 고직사, 서재 등 여러 정암 건물들이 짜임새 있습니다. 사당은 문이 닫혀있기도 하고안쪽 사우까지 가긴 어려울 것 같아서 바깥에서만 보았어요.그리고 매년 2월 중정과 8월 중정에춘계향사와 추계향사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향사'란 돌아가신 분의 넋을 기리며 음식을 바쳐 정성을 표현하는 의식이에요.향사 외에도 서예전이나선비들의 정신을 잇는 행사가 열린다고하니까행사가 있을 때 참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원 내를 걷다가 열린 문이 있어서 들어가봤더니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수령은 500년 정암 가량으로 높이는 17m,둘레는 4m에 이를 정도인데요.심곡서원이 1650년 건립되었으니느티나무도 서원 건립당시 함께 심어진 것 같네요. 햇볕이 따사롭게 비치는 곳으로주택가 사이에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조용해서 사색에 잠기기 참 좋은 장소입니다. 심곡서원 뒤편으로 이동하면 정암 조광조의 묘역이 있다고 하는데요.다음 번에 방문하면 문정공 조광조 묘 및 신도비부터 봐야겠습니다. 조선시대의 개혁가,정암 조광조의 정치이념을 승계하려했던유생과 선비들의 얼이 남아 있는 곳에한번쯤 방문해 보시면 정암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